5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학부생활을 정리했다. 솔직히 기분이 좀 많이 오묘하기는 하다. 평생 학생일 줄 알았는데 이게 이렇게 바뀐다고? 싶기도 하고.

전공을 선택하던 시즌, 돌고 돌아 세 개의 전공을 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은 “너는 졸업할 때 학부장상은 진짜 꼭 받겠다.” 였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동의했다. 어떻게 보면, 자유전공학부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경우가 아닌가! 서로 다른 전공을 세 개나 하다니. 그것도 따로따로 하는 게 아니라, 그걸 이렇게저렇게 묶어서 하나의 cohesive한 전공분야로 엮어내다니? 실제로는 별 생각이 없다가 얻어걸렸던 경우임에도, 전공 조합과 내 분야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아서 스스로도 좀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을 좀 더 넓게

돌고 돌아, 학부장상은 받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비대면 졸업식에서 연설도 했다.


자유전공학부 구성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16학번 김해수입니다.

입학을 할 즈음에, 저는 제가 생명과학을 전공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물론 첫 학기에 자신만만하게 신청한 생물학 수업이 저와는 너무나도 안 맞는 바람에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지만요. 그때부터는 끝없어 보이는 혼돈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전공 탐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호기롭게 도전한 과목들에서는 마음과 성적의 상처를 받아 가며 도망쳐 나오기 일쑤였고, 너무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방황하며 실속 없이 몸만 바쁘게 놀리곤 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수많은 고민과 타협을 겪으며 정착한 전공 조합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고, 그 전에는 제가 하리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것들이었지만, 놀랍게도 제게 꽤 잘 맞았습니다. 자유전공학부에 오지 않아서 여러 전공 사이를 헤멜 기회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심장이 철렁할 정도로요.

자유를 전공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나누긴 하지만, 자유전공학부가 제게 준 것은 정말로 쉽게 주어지지 않는, 도전하고 또 실패할 자유였습니다. 자잘한 성공과 실패를 겪었지만, 그것이 하나하나 쌓여 입학 시기의 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지금의 저를 만들어냈습니다

자유전공학부 소속으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처음 입학하는 순간부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로 직진하는 사람들도, 마지막까지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탐색하며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저와 너무나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저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상상하고,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멋진 학우분들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결코 같지 않은, 서로 다른 경험과 관계, 전공에 둘러쌓인 우리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한없이 낯설게 느끼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결코 같을 수는 없는 자신의 길을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것을요. 언젠가는 멋지게 빛나는 누군가를 따라가고 싶었고, 닮고 싶다는 동경심과 질투심에 마음 곯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닮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신 자유전공학부와 그 안의 모든 구성원들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로 자유전공학부를 떠나는 여러분은, 몇 년의 시간 동안, 어떤 방식으로건 그렇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오셨을 것입니다. 졸업을 하며 더 이상 같은 소속이 아니게 되겠지만, 그 안에서 다같이 그려낸 길과 시간처럼, 앞으로도 더 다르고, 더 댜앙한 서로의 모습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저 역시 다른 곳에서 저 답게, 그리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의 소중함을 말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모든 동기, 선배, 후배 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