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과 영어대화, 유교적 나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게 된 지 한 달이 지났고, ‘교수님’ 대신 ‘쥬호’ 라는 칭호가 입에 꽤나 붙었다. 호칭의 힘이란 참 신기하기는 한 것 같다. 미국적 사고방식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줄곧 들어 왔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숨길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내 안에 숨겨진 유교적 본능이라던가. (말하면서도 끔찍하다) (‘숨겨진’ 보다는 ‘내재된’이라고 하자)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의를 지켜서 말하는 것이 ‘옳다’ 라고 언제나 들어왔던 나에게는, 그리고 꽤나 그런 소소한 ‘옳음’ 에 신경을 많이 썼던 나에게는 예의란 어쨌든 신경이 참 쓰이는 주제 중 하나다. 교수님들이 아무리 날 편하게 대해 주셔도, 몸이 안 좋으시니 쾌차하시라는 문자 한 통을 보내는 데마저 국어국문학과 친구의 검열과 확인을 거치는 나라서,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보내면 실례인가?"

영어로 말을 한다고 그게 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서 줄곧 ‘프로페서’로 호칭했다. 메일을 보낼 때도, 어디서 말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의 이메일에 cc되었을 때, ‘Dear Juho’ 라고 칭하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나의 유교적 본능은 움찔했다. 저렇게 말해도 괜찮나? 신경 안 쓰시나? 그런 것. 세상 의미없는 거라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여태껏 그게 너무너무 의미있다고 배워 왔는걸.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바뀐 문화를 직접 보여주는 게 제일 효과적이다. 랩 공식 언어인 영어의 영향과 교수님의 의지가 아마 섞여 있겠지? 처음에는 까마득해 보이는 석, 박사 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게 무서워서 말을 잘 걸지도 않았다.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말을 잘 걸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모두 교수님을 ‘쥬호’라고 부르니까 나도 덩달아 ‘쥬호’라고 불렀다. 인턴들이 편하게 사수분을 부르는 걸 보고 조금씩 편해졌다. 구글 드라이브에 코멘트 다는 것도, 발표 후에 피드백 하는 것도 전부, 아,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노력했다. 평소에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에 힘을 주고 있었더라고 생각하면, 힘이 빠져서 조금 더 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재밌다. 즐겁다. 교수님이 보고 계시는 공유문서에서 교수님을 놀리는 장난을 칠 수도, 슬랙에서 교수님 얼굴로 이모티콘을 달 수도 있게 되었다. 이게 내 연구 성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심리적 상태에는 확실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고, 즐거워진다. 사람들을 (비록 모니터 너머 다같이 있을 때만이라지만)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언어 하나 바꾼다고 이렇게나 편해질 일인가? (언어 하나가 아니지만) 그간 라포를 쌓아왔다고 생각한 다른 교수님들과는 내 이너유교셀프 덕분에 더 못 다가갔는데.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여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였으면 좋겠는데.

심리학 특수 용병 (‘쓸모있는 나’라니?)

여기에 오기 전에 심리학 전공을 뺄까 수도 없이 고민했었다. 전공 조합 자체는 걸어다니는 HCI인들, 컴퓨터 공부와 비교했을 때는 뭔가 쓸모가 덜해 보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내 다른 전공들과 잘 맞아떨어지는지도 모르겠고, 심리학 과목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고, 어디다 쓸 지도 모르겠는 굉장히 불확실해 보이는…. 그런 것들만 배웠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어쨌든 과학이 좋다고 했던 아이는 아마도 그런 불확실성이 싫었던 것 아닐까?

그런데 타이밍 좋게 랩에서 심리학 쪽과 관련 있는 프로젝트를 받아 왔다고 한다. ‘해수씨가 같이 하시면 딱일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듣고, 교수님과 코워커님의 반짝반짝한 눈빛을 반신반의하면서 동의했다. 나는 학부생인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한테 조언을 구하실 부분이 아닐 텐데….

내가 너무 자유전공학부적으로 살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세 학기 들어 온 심리 전공과목들은 생각보다 내게 잘 입력되어 있었고, 마침 이 프로젝트에서 응용하는 중요 심리학 개념은 내가 좋아했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열과 성을 다해 들었던 부분이었다. 교수님이 조심스럽게 “이 개념 혹시 들어본 적 있나요?” 라고 물어보셨을 때 내 눈빛도 아마 반짝 빛났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아는 지식은 굉장히 적었고,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임에도 꽤 적다. 그렇지만 나는 뭔가를 더 찾아낼 수 있는 기반과, 누군가 관련된 개념을 언급했을 때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연습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귀중한 자원이었고, 심리학 전공을 하는 것이 어쩌다보니 하는 게 아닌, 정말 나에게 중요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가 이걸 정말 쓰게 될 것 같아서 하는 거구나 라는 깨달음을 새로이 얻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게 재미없어도, 내가 직접 주인의식을 가지고 그 지식을 활용한다는 것은 기분이 많이 다르다. 이 기회가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으면서도, 정말 다행이다.

(그 와중에 전산학부 랩에 와서 평생 읽은 전산 관련 논문보다 심리학 논문을 많이 읽게 되었다는 것은 참 웃긴 일이다)

그 영어 잘하시는 분이요

자랑은 자랑이지…만.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 영어를 정말정말 잘하는 구 애인에게도 거의 완벽한 미국식 영어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내 입으로 말해도 되는 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 하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어로 글 쓰는 것보다는 훨씬 더 편하다. 어린 시절 치기로 소설을 쓰겠다고 난리쳤을 때도 영어로만 써 댔을 판이니.. 확실한 것은, 나는 한국어 능력 백분위보다는 영어 능력 백분위가 더 높으리라는 것. 그냥 한국어를 못 한다는 게 아니고?

그럼에도, 킥스랩에 도착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영어를 너무 잘 해서 놀랐다. 사실 일상대화에서도 영어를 쓰는 것을 추천할 정도면 정말 당연히 영어에 익숙해지는 환경이겠지만, 주변 카이스트 지인들에게 영어에 대한 불평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랬는지, 많이 놀랐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 영어로 일상대화를 하는 집단에 들어 있었던 적도 없었고(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때가 더 신기했다). 그러다 보니, 내 얄팍한 정체성은 조금 흔들렸다.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면, 나의 차별점은 뭐지?

(연구를 하러 왔으면 차별점은 연구가 되어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은 이렇게 해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솔직히 조금 철렁했던 것 같다. 약간의 위기감이랄까? 그래도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잘 적응했다.

첫 주가 지나기 전에 “해수씨 어디서 살다 오셨어요?” 라는 말을 세 번 들었다. 아무 데도 살다 온 적 없다고 하면, 어김없이 “그럼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라는 답이 온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렇다고는 해도, 이 말을 살면서 백 번도 더 들었겠지만 여전히 답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확신을 가지고 내가 어딘가에서 살다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비백인에게 너 영어를 참 잘하네! 라고 말하는 것은 레이시즘이지만, 살다 오지 않은 사람에게 너 어디서 살다 왔어? 라고 물어보는 것은, 음, 당연히 전혀 다른 일이겠지만, 언제나 그 상황이 생각나고 언제나 기분이 묘하다.

랩미팅 몇 번을 하고 나서, 사람들도 만나고, 익숙해졌다. 공통지인이 있거나 내 지인을 만나는 사람들도 생겼다. 참 신기한 것이, 사람들이 모두 나를 ‘영어 잘하시는 분’ 이라고 소개했노라고 전해주곤 했다.

아, 어제 해수씨 친구 만났어요. 해수씨 영어 되게 잘하신다고 제가 말했는데.

감사하고, 조금은 당황스럽고, 기분이 묘하다. 여기 사람들 어디 가서 절대 영어로는 안 질 사람들일텐데. 정말 외국인도 있고, 외국 국적자도 있고. 나는 여기서 위기감을 느꼈을 정도로 다들 너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콕 집어 ‘그 영어 잘하시는 분’으로 소개될 일이었는가 - 라는 생각은 들었다.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나. 여하튼 감사했지만, 알 수가 없다. 고맙다. 기분이 좋다. 연구 잘하시는 분으로 소개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흠.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게 내 정체성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고, 이것이 우월감의 원천이 되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해서보다는, 내가 이로 인해서 많은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영어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워야겠지. 그럼에도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 이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